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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미네의 꿈을 꾸는 키세 보고싶다에서 시작한 뻘글. 

인터하이가 끝나고 나서부터 아오미네의 꿈을 꾸는 키세. 

만우절이 지나기전에 올림. 

애니 1기 스포일러 있음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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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또 이꿈임까?"

낯선공간에서 눈을 뜨자마자 키세는 탄식같은 소리를 흘렸다. 또 그꿈이었다. 인터하이가 끝나고 매일같이 꾸는 그 꿈은 허무하게도 아침이 되면 발을 잽싸게 놀려 희끄무래한 잔상을 남기곤 키세의 기억속에서 빠져나가버렸다. 그리곤 이렇게 키세가 잠이 들때만 은근슬쩍 다가와 반복 되는 것이었다.


  비현실적이지만 낯익은 공간이었다. 익숙한 길거리의 농구코트 위에 눈부신 해가 중천에 떠올라 있었는데도 한쪽에서 또다른 해가 솟아오르는 중이었다. 두 빛이 맞닿은 부분에서 노을이 일렁이며 서있는 인영의 그림자에 어룽졌다. 농구코트 밖에는 새카만 밤하늘에서 별이 가끔씩 짧게 빛나고 있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차의 경적소리, 깔깔거리며 지나가는 학생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처럼 농구코트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들도 없었다. 농구공이 코트와 커다란 손을 오가며 퉁하고 울리는 소리만 일상을 흉내낸 기이한 공간을 가득채웠다.


  "안녕하심까. 제 꿈속의 아오미넷치. 또 보네여. "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키세는 얼굴을 보지 않고도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았다. 모를리가 없었다. 키세의 눈높이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있는 짧게친 검은 머리와 햇빛이 쓰다듬고 지나간 갈색 피부. 허리를 약간 굽히고 농구공을 단단히 쥐고있는 뒷모습만으로도 눈앞의 아오미네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까지 눈앞에 선명했다.


  "오늘은 토오 유니폼임까? 아오미넷치 안그래도 시커먼데 우중충함다. 이거 보라구요.이 하얗고 파란 카이조 유니폼이 얼마나 예쁨까. "

아오미네가 뒤돌아보는 일도, 대꾸해주는 일도 없었지만 키세는 계속 투덜거렸다. 어차피 시끄럽다고 할 사람은 하나도 없는 제 꿈속이니 그정도는 괜찮았다. 키세의 사복은 어느새 카이조의 유니폼으로 바뀌어 있었다. 모델일때도 이렇게 갈아입을 수 있다면 몹시 편하겠다고 잠시 딴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카이조의 유니폼을 뽐내며 몸을 바로 세웠다. 오늘 휴식 시간에 흘린 비타민 음료의 흔적은 조금도 없는 깨끗한 유니폼이었다. 얼룩이 있었던 부분을 만지작 거리고 심호흡하며 숨을 고르고나서 키세는 아오미네의 앞으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아오미넷치. 오늘이 마지막이죠? "

아오미네에게서는 여전히 긍정도 부정도 없었지만 키세는 꿈속의 아오미네를 보자마자 오늘이 이 긴 꿈의 끝일거라고 직감했다. 꿈에서 깨어나면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인터하이가 끝난 직후부터 계속해서 아오미네는 키세의 꿈에 쳐들어와서 농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아오미네가 그랬다기 보다는 키세가 일방적으로 불러들인것에 가까웠지만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동경이라는게 그렇게 쉽게 그만 둘 수 있는게 아닌 모양이었다.


  " 마무리를 짓죠. 아오미넷치 "

동경이야 어쨌든 길기만 하고 쓸데없이 감상적이기만 한 이 꿈은 오늘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모양이었다. 키세는 아오미네가 들고 있는 공을 채가기 위해 손을 뻗었다. 여전히 아무말도 없는 아오미네의 시선이 키세와 잠깐 맞닿았다가 떨어지고,  다음 순간 아오미네는 키세의 등 뒤로 돌아 나갔다. 키세가 거기 있기는 하냐는 듯한 가벼운 동작이었지만 키세도 빨랐다. 제쳤다고 생각한 키세가 다시 자세를 낮추고 아오미네의 앞을 막았다.

" 저, 여름에 연습 열심히 했다고요? 그냥은 못 보내드림다. "

잠시 아오미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도 전력을 다해야 하는 일대일에 금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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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 정말, 제 꿈속인데 마지막 한번 정도는 져줄수 있는거 아님까? 정말 너무 함다. "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전광판이 아오미네가 여태껏 넣은 점수를 반짝거리면서 보여주고 있었다. 카이조-토오 전에서 토오고의 득점과 같은 점수 였다. 키세가 막아서긴 했지만 꿈속의 아오미네는 몇배속 영상을 감는 것처럼 빨랐다. 키세를 인식하지 조차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키세는 아오미네를 막아서면 자신을 통과해서 지나가는게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전에 몇번은 실험해 봤던것도 같지만 그때마다 키세는 꿈에서 깨어났었다. 키세는 이 복잡한 꿈을 하루 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꿈속의 아오미넷치가 현실의 아오미넷치보다 더 강한건 뭡니까. 꼭 사기같슴다."

심지어 그만큼의 경기를 하고 땀도 흘리지 않았다. 이거 꼭 매트릭스에 빠진거 같잖아요. 언젠가 키세의 카피능력에 대해서 알게 된 매니저 형이 보여준 매트릭스 영화에서 나오던 모피어스와 네오의 단련 장면 같았다. 꿈속이면 제 마음대로 되어야 하는거 아니냐고 투덜 거린 키세였지만 첫날부터 지금까지  꿈속의 아오미네는 멋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어쩌면 지금 꿈 속 보다 좀더 깊은 곳에서 아오미네를 동경하고 있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아무리 제 무의식이라지만 너무 섬세하고 부끄러운 녀석임다.


"카가밋치에게 넘어가면 안돼요. 아오미넷치. "

하지만 그만큼의 점수를 혼자 얻어놓고는 웃지도 않고 우두커니서서 공을 쥐고 있는 아오미네의 표정을 보고나서 키세는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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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쿼터인지 뭔지, 세이린과 토오의 대결은 1차전에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아무도 세이린이 이길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아무리 세이린이 떠오르는 루키라고 해도 토오는 기적의 세대, 그것도 에이스가 있는 팀이다.다들 토오가 1차에서 올라올것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짰고 그건 카이조도 마찬가지였다. 감독의 그런 태도에 키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카이조는 둘 다에게 져본 경험이 있다. 물론 하나는 연습경기고, 초반에는 키세도 참가하지 않은 시합이었다. 키세는 쿠로코를 좋아했기에 세이린이 이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아오미네가 질 것같지는 않았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그랬다.  카사마츠는 어느쪽이 올라오든 빚을 갚아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라고 키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맞는 말이었지만 키세는 어쩐지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카사마츠 선배는 겨우 두살 연상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어른스러우니까, 카이조의 캡틴이니까 그렇게 여길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키세는 자기가 말한대로 이것저것 따져가면서 농구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어른이 아니었다. 키세의 인내심, 절제하는 태도 같은것은 모델일을 하면서 충분히 가져다 쓰고 있었다. 농구는 즐겁고 재미있고, 어쨌든 신나고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그렇게 된것은 아오미네 덕분이었다. 그런 아오미네가 농구를 즐겁게 했으면 하는 마음이 키세에게도 분명히 존재했다. 물론 그런 동기만 있는것은 아니었다. 카이조의 멤버들과 이기고 싶었고, 연습경기 때 진 세이린에게 이만큼 자랐다는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로, 아오미네에게 이기고 싶었었다.


  윈터컵에서 세이린과 토오가 1차전에서 맞붙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나서 키세는 제 답답함이 초조함에서 기반했다는 걸 깨달았다. 키세가 아오미네를 이기기 전에 세이린이 토오를 이겨버릴지도 몰랐다. 물론 카이조는 토오에게 12점 차로 졌고, 세이린은 토오에 더블 스코어로 졌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카이조가 세이린보다 두배로 강하다는 이야기가 아닌게 스포츠의 세계다. 아오미네가 카가미에게 질리는 없겠지만, 어쨌든 아오미네라도 혼자할 수 없는게 농구였다. 


다른 기적의 세대들 보다 농구를 늦게 시작해서 빠른 성장을 보여준 키세는 카가미와 제일 먼저 시합을 해본 기적의 세대기도 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고 서툴렀지만 키세는 카가미를 카가밋치라고 불렀다. 그리고 세이린 감독과 훈련과 미도리마와의 대결로 카가미는 점점 강해졌다. 토오와의 대결에선 역시나 아직 무리였지만, 키세의 카피능력을 가능케 한 안목은 이 여름이 지나면 카가미가 이 발전속도라면 큰 고지를 뛰어넘을 것이라는걸 알 수 있었다. 이 여름이 지나서 카가미가 아오미네와 맞붙게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제가 먼저였다구요 아오미넷치." 

키세는 여전히 노을을 바라보고 서있는 아오미네의 눈을 한손으로 가렸다. 콧대가 손바닥에 와 닿고 키세의 엄지가 여전히 말이 없는 아오미네의 입술에 닿았다. 

카가밋치는 진짜 치사함다. 쿠로콧치도 데려갔는데 아오미넷치까지 뺏아가면 진짜 양심없는 양킴다. 눈썹이 두갈래일때 부터 치사한건 알아봤다니까요. 

" 그러니까 아오미넷치, 카가미한테 넘어가시면 안됨다. 진짜로요. " 

키세는 아오미네의 눈을 가린 그대로 고개를 살짝 틀어 아오미네에게 입맞췄다. 여전히 대꾸가 없는 미지근한 입술에 키세의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꿈에서 깨려는지 시야가 흐려져서 키세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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