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의로 집어넣은 청봉이 반친구 A가 등장합니다. ++ 화청입니다 청화아닙니다. 청봉이 아래 언급있음. +++ 옮겨옴
"왜, 왜 이제야 만나게 된걸까 하고, 운명이라고 느껴버려서, 그러니까, 그게.." 그렇게 말하는 후지마키군의 통통한 주먹은 하얗게 될정도로 꽉 쥐어져 있었다고, 나중에 아오미네는 생각했다. - 전통적으로 강호였던 테이코에 비해서 토오 농구부는 신생강호팀이었고 농구부원이 아닌 학생도 많았다. 아오미네는 그런 학생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었다.
"젠장, 사츠키 녀석.." 아오미네의 미간은 아침부터 잔뜩 찌푸려져서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제는 토오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있는 연습경기날이었고, 또 마이짱의 코스프레 특집 화보가 서점에 풀리는 날이기도 했다. 둘중에 어느쪽이 아오미네에게 중요한 것인지는 명백했다. 어차피 시시할 연습경기, 수업이 끝나자마자 뛰어가려던 아오미네를 잡은건 모모이였다.
"다이짱,오늘은 첫 연습경기라고! 그간 연습 빠지는건 몇번 봐줬지만 이건 안돼! " 곱게 손가락을 치켜든 모모이의 등장으로 술렁거리는 학우도 있었지만 아오미네는 그것들한테 정신차리라고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니들은 쟤 꼬리 아홉개가 안보이냐? 모모이가 뭐라고 하든 이번 화보집은 사야 했다.
"연습이나 연습경기나 뭐가 다른데? 어차피 똑같이 시시할거라고, 사츠키. " "그럼 다이짱이 지금 사러가는 거랑, 책상서랍이랑 사물함, 침대아래에 던져둔 건 얼마나 다르다고 그래? "
그런 위치까지 알고 있을 필요는 없지 않나? 모모이의 치켜든 손가락을 고이 접어 눌러주고 싶었지만 결국 그날 아오미네는 연습경기를 뛰었다. 경기가 끝나고 서점으로 뛰어갔을땐 이미 서점이 문을 닫은 뒤였고 아오미네는 눈물을 머금고 다음날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아침에는 서점에 들렸다 가면 지각일거라고 모모이에게 끌려왔다.
사실은 사츠키가 나보다 센게 아닐까. 가슴속에서 치고 올라오는 의문을 아오미네는 다시 곱게 묻었다. 세상에는 17살의 남자애가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 있는 법이다.
"제엔장!" 짜증이 치밀어 올라서 아오미네는 책상에 아무렇게나 엎드렸다. 시합도 재미가 없었는데 화보도 없다. "제에에에엔장, 짜증나는 사츠키 같으니!" 생각할수록 화가나서 머리를 긁고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앉았다가 소리를 지르는 아오미네의 서슬에 앞자리에 앉아있던 통통한 남학생이 놀라 들고 있던 잡지를 꼭 쥐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아오미네의 시선도 점점 얼굴이 하얗게 되어가는 남학생과 마주했다.
"어!" "어...?" " 그거! 어제 나온 화보지! 나 주면 안돼? 넌 어제 봤을 거 아냐. 내가 내일 새거 사다줄게! " "어..그래." 다음날 정말로 아오미네가 새 잡지를 사다 주었을때 그 말이 잡지를 갈취해가려는 빈말이 아니었냐고 당황했고 아오미네는 어째서 자신이 그런 오해를 산거냐며 당황했다. 그 뒤로도 종종 아이돌 덕후인 후지마키군은 사온 잡지를 나중에 빌려주기도 했고 아오미네가 연습경기나 연습을 빠질수 없는 사정이 있으면 대신 사다주었다. 그렇게 시시하고 소소한 교류를 끝낸건 그쪽이었다.
" 덕질, 그만두려고..." "어엉? 누가 오타쿠라고 놀리기라도 하는거야? " 안그래도 험한 얼굴을 더 찌푸리는 아오미네에게 후지마키군은 여친이 생겼다고 수줍게 이야기 했다. ...이쁘냐? 아오미네의 첫마디는 그랬다.
" 마이짱 처럼 예쁘거나 가슴이 큰건 아니지만, 그게, 웃으면 엄청 귀여워서.." 귀까지 빨개져서 더듬거리는 후지마키군은 멋적었는지 이것저것 묻지 않은 이야기까지 털어놓았다. "그, 뭐랄까, 정말 상냥하고 귀여운 애고, 마음도 잘 맞아서, 왜 이제야 만난걸까, 조금 더 일찍 만났다면 좋았을걸 하는 기분도 들고, 아무튼, 그래서.."
막 시작한 닭살 돋는 커플이나 할법한 운명 타령이었지만 아오미네는 참고 들어주었다. 그때에는 지나치게 감상적인데다가 낯부끄럽기까지 한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의 아오미네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 카가미와 아오미네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것은 얼마되지 않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그렇게 된것은 무척 당연한 수순이었다.
카가미를 불러내서 어느때와 같은 일대일 경기를 하고, 자연히 배가 고파져서 패스트푸드점으로 들어가서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샀다. 산더미같이 햄버거를 쌓아놓고 감자튀김을 행복한 얼굴로 우물거리는 카가미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오미네의 머리에 갑자기 그말들이 떠올랐다.
'마이짱처럼 예쁘거나, 가슴이 크지는 않지만, 그게, 웃을때 귀엽고...' "맛있냐? 넌 이게 다 어디로 들어가냐, 진짜. " 그게 왜 지금 떠오르는거지? 스스로에게 당황하면서 아오미네는 감자튀김의 산을 해치우고 햄버거로 손을 뻗고 있는 카가미에게 퉁을 주었다. 무라사키바라도 많이 먹긴 했지만 주로 과자를 야금거리는거지 카가미처럼 열심히 그리고 무자비하게 음식을 해치우지는 않았다.
"왜 먹는데 시비야. 네 햄버거까지 먹어치워버린다? 아, 이거 맛있네." 먹는데 딴지 걸린게 한두번도 아니고. 카가미는 아오미네에게 대꾸해주는 대신 맛있어 보이는 햄버거를 한입 베어무는 쪽을 택했다. 만족해서 카가미의 입매가 풀어졌다. 땀흘리고 연습한 후에 맛있는 음식은 굉장히 진부한 문구지만 하루의 보람이었다.
'왜 이제야 만난걸까, 조금 더 일찍 만났다면 좋았을걸 하는 기분도 들고..' 다만 그 하루의 보람을 오랜만에 느끼게 해 준게 카가미라고 생각되자 아오미네의 머리속은 계속 언젠가 들어봤던 첫사랑에 대한 낯간지러운 문구들로 가득차고 있었다.
"...말도 안돼." 아오미네 다이키, 열일곱살의 인생에서 대전환점을 꼽으라면야 카가미 타이가가 천재의 문을 열어 젖히고 들어온 날이겠지만 그걸로 성정체성에서 전환을 맞을 것 까지는 없지 않나? 열이 오르는 기분에 아오미네는 목 뒤에 손을 얹었다. 고개를 내려 감자튀김의 흔적을 내려봤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카가미를 쳐다보기를 반복했다.
'....저정도면 그래도 마이짱만큼은 아니지만 큰가슴인거 같기는 한..' 아오미네가 머리를 탁자에 박으면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고민하는 동안, 카가미도 점점 미쳐가는 것 같은 아오미네가 걱정스러워졌다. 농구 잘하고 밥 잘먹고나서 대체 왜 저러고 있는지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야, 아오미네.." 한번만 박으면 괜찮지 않을까로 생각이 나아간 아오미네가 테이블에 머리를 박으려는 순간 뻗어나간 카가미의 손바닥 덕분에 테이블은 아오미네의 머리와 부딪히는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 다만 참사는 다른곳에서 일어났는데, 아오미네가 카가미의 손을 보고 급하게 방향을 트는 바람에 아오미네가 카가미의 손바닥에 입을 맞춘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당황하며 허둥지둥 사라지는 아오미네와 헤어지고 나서 카가미도 아오미네의 입술이 닿은 손바닥이 지나치게 뜨겁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연락하다가 보름이 넘도록 연락하지 않는 아오미네가 신경쓰이고, 또 신경쓰이다가 정신 차려보니 사귀고 있었다.
다만 이 고백을 누가 먼저 했는가는 아오미네와 카가미의 의견이 갈리는데, 두 사람이 서로에게 새빨간 얼굴로 동시에 소리쳐 고백하는걸 불우하게 들어야만 했던 쿠로코는 언제나 '꺼지세요 커퀴벌레들이여'의 태도를 고수하며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았다.
--- 사귄다고 해서 두 사람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급격하게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아오미네는 언제나 카가미를 일대일 농구를 하자고 불러냈다. 그러면 카가미는 신나게 달려와 농구를 했고 그리고 나서 패스트푸드점에서 산더미같은 버거를 먹었다. 가끔은 농구화를 같이 사러 가기도 했다. 재미있는 영화가 나오면 영화도 보러갔다. 큰 가슴과 농구를 좋아하는 두 고등학생의 데이트는 대개 그런식이었다.
" 색기가 없네요.." 심지어 쿠로코가 지적해주기 전까지 둘 다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 어? 테츠, 뭐라고..?" "야, 더럽게!"
자기는 맨날 부실에서 그라비아 화보나 보지만 제 예전 그림자가 그런 단어를 쓸 줄은 몰랐던 아오미네는 먹던 콜라를 주르륵 흘릴만큼 당황했다. 더럽다고 퉁을 주는 카가미의 목소리도 멀리서 들리는것 같은 충격이었다.
"두 사람, 사귀는 것 맞습니까? 전혀 둘 사이에 성적 긴장감같은거 안느껴지는데요. 사귄 기간은 꽤 된거 같은데. 제가 참견할 바는 아닌것 같습니다만.."
"테츠가.. 성적긴장감같은 단어를 말했.." 새삼스럽게 충격을 받은 것 같은 아오미네보다는 카가미쪽이 이해가 빨랐다.
"그렇네. 굳이 이야기 해줘서 고맙다. 쿠로코." 그리고 다른주제, 이를테면 농구라든가 농구라든가 농구 같은 주제로 돌아가는 동안에도 아오미네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게 그렇게 충격 받을 일이야? " "...사츠키가 처음 생리했을때만큼 충격이야. " 뭔가 비유가 글러먹었다고 생각했지만 카가미는 무시했다. ----
"잘 할수 있기는 무슨. 약팔이냐?" 약팔이는 이미 토오에도 한명 있는데. 곧 졸업하겠지만. 태평하게 입을 벌리고 자는 카가미가 얄미워 코를 잡으니 숨이 막히는지 입으로 푸푸 소리를 내는 모양새가 우습다.
' 좋아한다. ' 새삼스럽지만 그랬다. " 왜 이제야..." 카가미의 눈을 가리고 있는 앞머리를 넘기고 이마에서 감은 눈까지 천천히 쓸어본다.
'왜 이제야 만났지? 좀 더 일찍 만났다면 좋았을텐데. ' "...뭐야, 여자애냐.. " 재능이 개화해버리고 농구가 재미 없어진건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아오미네는 자신의 뒷목을 잡아오던 공포를 기억할 수 있었다.
네가 가려는 그곳에는 아무도 없어.
그리고 카가미를 만났는데, 저 선너머 어디든 쫓아가 주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재능도 갖추었다. 저 세계에 너만 혼자 있게 두지 않겠다. 아오미네에게 카가미가 온몸으로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적막했던 공간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면서. 건방진 천재녀석아, 내가 여기 있다고.
"뭐야 그게.." 왠지 울음이 나올것 같았다. 바보같이 여자역할을 했다고 머리속까지 여자가 되어버린거 아냐? "윽...흐으으..." 목구멍을 타고 서러움이 올라왔다. 왜 너는 좀 더 일찍 내 앞에 나타나 주지 않았을까. 네가 있어서 이제 농구가 시시해질일은 없겠지만 조금만 더 일찍 와주면 안되었던 걸까.
"그거 너무, 바보 같....윽..." 한번 터져나온 눈물은 멈추는 기능이 고장난것처럼 줄줄 흘렀다. 손등으로 문지르고 다시 닦아내는 손바닥에도 흥건하게 눈물이 고였다. 농구공보다 받아내기가 버겁다고 생각했다. 눈물이 나는데 마음은 더욱 갑갑해져서 숨이 차오르고 입에서는 어린아이가 실컷 울고 제 스스로 울음을 못 거두는 양 히끅 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시야는 뿌옇게 일그러지고 머리는 뜨겁게 달아올라 지끈거렸다. 귓가가 윙윙 울리고 숨이 답답했다. 심호흡을 하려고 했지만 꺽꺽 벌어진 입에서는 새된 바람 소리만 빠져나왔다.
카가미. 바보 카가미.
"야, 너, 너 우냐? 괜찮아? 어? " 소리가 너무 컸는지 아니면 야성의 감이었는지 카가미는 자다가 이상한 기척에 눈을 떴다. 그리고 놀란 마음을 가라앉힐 새도 없이 탈진할 기세로 울고 있는 아오미네를 끌어안았다.
' 설마 내가 너무 못했던건가? 그래서 그런가? ' 차마 그렇게 물어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카가미는 아오미네를 달래는 쪽을 선택했다. 카가미의 손이 단단하게 아오미네의 머리를 받치고 다른 손은 빠른 속도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다정하게 말로 달래는 재주는 없었기 때문에 카가미는 그저 천천히 아오미네의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맞대오는 따뜻한 가슴팍과 투박한 손길에 아오미네의 울음 소리도 점차 작아지고 숨소리도 점점 잦아들어갔다. 가끔씩 히끅하는 소리와 코를 훌쩍이는 소리와 정신 차리니 미칠듯이 부끄러워진 아오미네만 남았다.
"...이제 좀 괜찮냐? " 숨쉬는 문제라면 괜찮아졌지만 아오미네는 카가미의 어깨 움푹한 부분에 얼굴을 묻은 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냥 이 모든 상황이 부끄러워서 귀끝이 뜨거웠고 눈이 따가웠다. 내일 아침에 보면 틀림없이 흉하게 부어있겠고 쿠로코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카가미를 향한 제 감정이 말로 꺼내는 순간 바래버리고 말 복잡한 감정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 부끄러웠다. 여자애도 아니고.
"몰라 임마." 그리고 억울했다. 아오미네는 카가미를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다. 기다리는게 카가미라는 것도 몰랐고 제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렇지만 긴 시간동안을 외로워 했다가 힘들어 하면서도 농구를 놓지는 못하면서 기다렸다. 카가미는 그런 적이 없다. 카가미의 재능은 개화했을때 부터 상대가 있었다. 괜히 야속한 마음이 들어 아오미네는 얼굴을 들지 못한채 그대로 있었다.
자다가 봉창맞은 것도 억울한데 아오미네가 왜 울었는지 말해주지 않으니 카가미도 당황스럽다 못해서 마음이 뒤숭숭했다. ' 애인이랑 처음하고 자고 일어났는데 애인이 펑펑 울고 있었습니다. 제가 너무 못해서 그런걸까요? 아니 그런데 그러면 할때 아프다고 하던가, 너 못한다고 하던가 해야하는거 아닌가 왜 자고 일어나니까 울지? 하지만 같은 남자끼리 너 못한다고 하면 그건 또 진짜 자존심 상하고 마음에 상처가 나고.. 하지만 농구를 못한다고 비웃었던 아호미네에게 그정도의 섬세함이라는게 존재하는걸까?? 아냐 쿠로코가 색기라는 단어 썼다고 굳었던걸 생각해보면 의외로 부끄러움이라던가 섬세함이라던가 있을거 같아 그럼 역시 그건가? 내가 너무 못했나?? ' 아오미네가 얼굴을 들지 못하는 사이 카가미의 남자로서의 자존심도 차마 묻지도 못하고 조금씩 찌그러져 가고 있었다.
"됐다, 잠이나 자자. 자다가 이게 무슨 난리냐.." 아오미네는 고민하고 부끄러워 하는 것을 포기하고 카가미의 팔을 끌어당겨 누웠다. 망설이면서도 카가미는 순순히 끌려왔고 아오미네는 등에 와닿는 따뜻한 온기에 눈이 슬슬 감기는 걸 느꼈다.
'이제야 만났으면 된거 아닌가. 이녀석이나 나나 머리도 나쁘고 복잡하게 생각해봐야 머리만 아프니까. 내일은 또 1:1 도 하고....'
"잘자라 카가미.." 그 말만 남기고 잠들어 버린 아오미네를 카가미는 혼자 미안해져서 끌어안았다. 굉장한 오해가 있었지만 끌어안은 카가미도 그 따끈따끈함에 금방 노곤해져서 잠이 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