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에서 풀었던 썰을 연성으로 옮겨보았습니다. 오소마츠가 대요괴, 카라마츠가 어린 텐구, 이치마츠가 네코마타 반요로 나오는 요괴 AU입니다. 오소>카라><이치에 가깝습니다. 눈알이나 장기에 대한 묘사나 요괴가 인간을 먹는 표현이 나오니 주의해주세요. 이번 편에는 직접적인 식인 묘사는없습니다.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와 만난 건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본능과 무의식의 영역에 남아있겠죠. 다음편 쯤에는 끝날 수 있을것 같네요!
오소마츠는 대 요괴, 카라마츠는 텐구 모티브로 스님의 수행을 도우려고 한다는 설정, 이치마츠는 네코마타라고 꼬리가 두개달린 고양이 요괴의 혼혈이라는 설정입니다. 적당히 옛날 배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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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마츠는 뒤로 두 번 재주를 넘고 사람으로 변했다. 보랏빛 옷을 걸친 하얀 얼굴의 청년을 향해서 카라마츠는 박수를 쳤다. 변신한 이치마츠의 옷이 지나치게 품이 넉넉하다던가, 밖에 나가기에는 지나치게 자유 분방한 차림이라는 건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잘했어! 이제 버텨볼까? 막 해가 떠오른 참이니까, 정오까지 버텨보자.”
지금의 이치마츠는 사람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옷이야 사서 입어도 그만이었다. 카라마츠는 반짝거리는 근사한 옷들을 꽤 많이 가지고 있었다. 자개껍질을 박아넣고 끝에 진주를 올린 신발이라던가, 흑단으로 몸을 그리고 호박으로 눈을 박아 넣은 까마귀가 그려진 허리띠라던가 하는 물건이 가득찬 그 상자는 카라마츠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였다. 이치마츠에게 몇 개쯤 주어도 티도 안날 것이었다. 이치마츠가 듣는다면 질색할 법한 생각을 하며 카라마츠는 해를 등지고 서서 그림자를 따라 바닥에 선을 그었다.
“왜?”
카라마츠가 간이로 쓸 해시계의 모습에 만족하며 손을 터는 동안 이치마츠는 손바닥을 펼쳐 본인의 손금을 들여다 보면서 물었다. 요괴로 변한 탓일까, 손금도 이치마츠가 기억하는 것과는 다른 모양이었다. 짧던 수명선이 분명히 길어져 있었지만 그게 의미가 있을 지는 알 수 없었다.
“아, 그야 정오는 요괴가 가장 약해지는 시간이니까. 그때 버틸 수 있으면 다른 때도 버틸 수 있을거야.” “아니, 왜 인간 모습을 오래 유지해야 하냐고.”
요괴로 변한 이치마츠가 달라진 것은 단순히 소년에서 청년으로 변한 외양만이 아니었다. 이치마츠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마을 사람이 던진 돌에 맞아 항상 눈가에 멍이 들어 있던 소년과 지금의 자신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단순히 반요와 요괴의 차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일이었다. 어쩌면 요괴가 되는 과정에서 뭔가 잘못 되버린 걸지도 몰랐다. 이치마츠는 예전보다 말이 많아졌고, 궁금한 게 있으면 말을 자르고라도 물어 보고,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짜증을 냈다. 그건 시선을 발끝으로 떨어트리고 어깨를 움츠리고 있던 어린아이와는 명백하게 다른 태도였다. 그리고 처음에 그 사실을 깨닫고 당황한 이치마츠와 다르게 카라마츠는 변한 이치마츠의 태도에 이상을 느끼지 못한 모양이었다.
“음, 인간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그러니까, 왜?”
몇번 입 밖에 내어 말한 적도 있지만 카라마츠는 바보스러운 곳이 있었다. 이치마츠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건 그 때문이 아닌가 하고 이치마츠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도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자신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생각해봐. 안심시켜서 먹을 게 목적이라면 잠깐만 사람으로 변할 수도 있지. 잠깐 여자로 변해서 산속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정도라면 상반신만 변할 수 있어도 괜찮아. 하지만 가급적 인간을 해치지 않을 거라면 들키지 않고 오래 인간으로 버틸 수 있는 편이 좋잖아?”
그리고 그 바보스러움은 카라마츠의 낙천적인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점이 이치마츠가 비난하고 싶은 부분이었고 동시에 그 비난을 일부만 하게 되는 원인이기도 했다. 요괴가 인간을 안심시키려고 인간으로 변한다는건 어디까지나 태평한 생각이고 바보스러운 생각이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해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상처는 남지 않았지만 이치마츠는 분명히 반은 인간이던 자신의 몸에 박힌 화살의 뜨거움을 떠올릴 수 있었다. 가뭄과 홍수로 얼룩진 세상은 평화롭지도 풍요롭지도 않았다. 하지만 서쪽산 끝자락, 요괴의 숲 근처에서 살아온 이치마츠와 동쪽 산에서 태어나 자란 카라마츠의 생각은 겹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넌 날개만 숨기면 되는거라서 그렇게 말하는 거 아냐? 이거 엄청 불편하다고.”
그래서 이치마츠는 다른 부분을 비난했다. 요괴로 눈을 뜨고 나서 이치마츠가 제일 당황한 부분도 그것이었다. 인간의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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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츠!”
이치마츠는 나뭇가지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달렸다. 카라마츠가 창문을 열어 보여줄 때는 몰랐지만 날개가 있는 요괴에 최적화 되어 있는 것 같은 집은 날개가 없는 이치마츠가 네발로 달리기에는 추락의 위험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이리저리 뻗은 나뭇가지를 타고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향해서 달렸다. 고양이의 모습으로 인간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는데 심지어 자신이 기억하지도 못하는 변성기를 지난 낯선 목소리였다. 스스로의 목소리가 어디서 나오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이치마츠는 몸을 돌린 카라마츠의 품에 뛰어 들었다.
“카라마츠, 카라마츠!” “이치마츠, 왜 그래?”
카라마츠는 발톱을 세운 채로 옷에 매달려 오는 이치마츠의 등을 쓸어주었다. 이치마츠의 꼬리가 카라마츠의 팔을 휘감았다. 착하지, 하고 어르는 소리를 내며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목 뒤를 주물러주었다.
“고양이가 되어 있었어!”
이치마츠는 그 말을 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귀에 거슬린다고 생각했다. 동쪽 산의 풍경을 보고, 카라마츠가 더 자라고 이불을 덮어주고 나가는 바람에 잠들었었다. 그리고 일어나보니 지금처럼 고양이가 되어있었다. 아니 고양이라기보다는 꼬리가 두개인 고양이 요괴쪽에 가깝겠지만, 이치마츠는 어머니가 네코마타 혼혈이었을 뿐인 인간이었다. 살아오면서 고양이가 되었던 경험은 없었다. 아버지에게 아기였을 때는 고양이 모습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이치마츠의 기억에는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종종 의식을 잃을 만큼 아팠을 때 잠자리에 난 발톱 자국 정도가 이치마츠가 자신의 요괴인 부분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전부였다. 카라마츠를 만나기 전에는 요괴를 만나본 적도 없었다.
“아, 그걸 제일 먼저 연습해야겠구나.” “연습한다고?”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이를 드러냈다. 의식하고 한 일은 아니었다. 그 사실이 이치마츠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분명히 인간이었던 자신이 고양이의 몸에 쳐박히게 된 느낌이었다. 찌그러들고 작아져서, 한없이 다른 존재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몸안에 휘도는 흉폭한 감정과 힘은 이치마츠가 작고 연약한 어린아이가 아니라는걸 스스로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자신을 응원해주는 것 같은 그 기운에 이치마츠는 반쯤 몸을 기대었다. 보랏빛 연기가 이치마츠의 몸을 휘감았다.
연기가 걷혔을 때 이치마츠는 다시 사람으로 돌아와 있었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태연하게 이야기 해주는 태도가 두 발로 버티고 선 이치마츠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화를 냈던 것이 바보같이 느껴져서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끌어안고 그 어깨에 고개를 올렸다. 처음 봤을 때 머리통 하나만큼의 차이가 나던 키는 이제 차이가 나지 않았다.
“지금 좀 힘들지? 당장은 오래 유지하기 힘들겠지만 노력하면 괜찮을거야.”
카라마츠의 말대로 힘들었다. 항상 이 모습으로, 아니 이보다 어린 모습까지 평생을 살아 왔었는데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한 몸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두 발로 서 있는 것도, 머리가 바닥에서 지나치게 높이 떨어져 있는 것이 불안했다. 털로 덮여있지 않은 귀가 추웠다. 꼬리가 없이 서 있는게 불안정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더이상은 못 있겠어......”
이치마츠는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에 카라마츠를 더 강하게 끌어 안았다. 작은 펑 소리가 나고 이치마츠는 다시 고양이로 돌아가 버렸다. 그런 이치마츠가 떨어지지 않도록 받아든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머리를 토닥여주었다.
“아야, 이치마츠!” “어린아이 취급 하지마.”
이치마츠는 조금 뛰어올라 카라마츠의 드러난 목덜미를 살짝 깨물었다. 뛰어오르는 것도, 무는 것도 모두 인간의 몸일 때보다 더 자연스러웠다. 고양이의 주둥이로 남의 목을 물어보는 건 처음인데도 딱 피가 안날 만큼만 물었다는 게 이치마츠의 기분 탓 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기분이 완전히 풀린 이치마츠는 물었던 부분을 놓고 혀로 쓸어올렸다. 부드러운 맛이 났다. 뭐라고 웅얼거리는 카라마츠를 무시하고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어깨부분에 몸을 웅크렸다. 고양이의 몸이 지나치게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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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잖아?”
카라마츠는 모르는 모양이지만 이치마츠가 정말로 익숙해진 것은 고양이 몸쪽이었다. 두개나 되는 꼬리의 사용법이라던가 수염을 이용해서 구멍의 크기를 재는법, 그리고 저녁에도 잘 보이는 눈 같은쪽이 이제는 훨씬 익숙했다. 가끔 이치마츠가 카라마츠의 침대에 꼬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위풍당당하게 네발로 뛰어 드는 이유를 카라마츠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애초에 인간 근처에 안가면 그만이잖아.”
이치마츠의 말에 카라마츠는 입을 다물었다. 요괴가 인간을 안심시킨다던가, 그런건 이상한 이야기였다. 그런 이치마츠에게 카라마츠는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다시 화색을 띄고 입을 열었다.
“왜, 인간 마을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와 살 수도 있잖아?” “그러려면 집에서도 변신해 있어야 하잖아?”
이치마츠는 고양이로 돌아갈까 하고 고민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 그러니까 인간 상태로 계속 있는 연습을 해야하는거지. 잠깐 경계를 풀었다가 허리에 바늘이 꽂혀서 쫒겨난 지렁이나, 수달, 너구리, 그리고 또.......” “아니, 필요 없으니까. 이미 인간 모습일 때 등에 화살은 꽂혀 봤고.”
카라마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눈썹이 축 처지는 게 다른 회유 방법은 생각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이치마츠가 화난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이치마츠는 요괴가 된 이후에 그 사실을 가지고 카라마츠를 탓한 적이 없는데도 종종 그런 표정을 지어서 이치마츠로서는 답답한 노릇이었다. 지금 이치마츠는 인간 마을에 어울려 살 이유도, 인간 여자와 어울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와 살고 싶었다. 동쪽 산도 카라마츠도 좋았다. 하지만 카라마츠가 그런 이치마츠의 마음을 눈치채는 대신 혼자만의 불행에 빠져있다면 그 사실을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치마츠는 그 말은 좀 더 뒤로 미루기로 했다.
“애초에 지금 당장 인간으로 못 변하는 건 아니잖아. 달리 가르쳐 줄 건 없어?”
그래도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그렇게 풀죽어 있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 이치마츠의 질문에 카라마츠는 금세 다른 고민에 빠져들었다.
“고양이지 고양이 요괴가 아니긴 하지만 포도와 양파는 조심하고. 아, 팥죽도 먹지 말고. 독초들에 대해 말해줬던 건 기억하지?” “응.”
손가락을 꼽으며 그렇게 말하는 카라마츠를 향해서 이치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어린아이 취급하는 버릇을 고치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속으로만 투덜거렸다.
“절 근처도 고승이 있으면 위험하지만, 신사는 다른 의미로 위험하니까 가지말고. 가끔 자기 영역에 들어왔다고 화내는 경우가 있거든. 그리고 또...... 그래. 한참은 많지만 일단 이정도라면 괜찮겠다.”
그런 이치마츠의 생각을 눈치채는 대신 카라마츠는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주의점들을 늘어놓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서야 질린 표정의 이치마츠를 향해 만족 한 듯이 웃었다. 이치마츠도 드디어 끝난 게 기뻐서 마주 웃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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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소마츠는 동굴 안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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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다음 순간 카라마츠는 귀를 감싸고 주저 앉았다. 귀가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아니, 불타는 것 같았다. 카라마츠는 손을 떼고 귀를 더듬거렸다. 귀는 제대로 붙어 있었지만 뜨거운 불이 카라마츠의 귀를 향해서 날름거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이치마츠는 웅크리고 있는 카라마츠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가 놀라운 것을 보았다. 카라마츠의 귀 주변으로 붉게 빛나는 선이 돌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회전했다가 불빛을 튀겼다가, 이리저리 질주하면서 카라마츠의 귀에서 폭죽이라도 터트린 것 처럼 화려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치마츠.”
인간이든 요괴로든 짧은 삶을 살고 있는 이치마츠지만 어딜 보나 평범한 일 같지는 않았다. 카라마츠는 당황한 이치마츠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지 않고 일어섰다. 항상 이치마츠가 궁금한 게 있으면 알고 있는 걸 모두 말해주려던 태도와는 대조적이었다. 그런 카라마츠가 낯설어서 이치마츠는 한걸음 카라마츠를 향해 다가섰다.
“미안, 며칠 못 들어오니까.”
이치마츠에게 그 말만을 남기고 카라마츠는 뒤돌아서서 약초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카라마츠?”
연거푸 부르는 이름에도 카라마츠는 대답하지 않았다. 카라마츠가 주머니에서 꺼낸 약초는 이치마츠도 잘 알고 있었다. 지혈 및 진통제 역할을 하니까 꼭 외워두라던 약초와 이걸 입에만 대도 몇날 며칠을 정신을 잃게 된다던 풀이었다. 그걸 양 손에 쥔 카라마츠는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카라마츠!”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따라 가려고 했다. 날아갈 수는 없지만 나무에서 뛰어내리면 쫓아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나가려던 이치마츠는 가지 끝에서 더 나아갈 수 없었다. 정체 모를 부적이 묶인 화살이 가지 끝에 박혀 있었다. 화살이 또 다시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화가 나서 이치마츠는 더 힘을 주어서 자신을 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막을 두들겼다. 고양이로 돌아가서 손톱으로 긁어대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인간이 되어서 몸을 부딪힌 이치마츠는 주변의 돌을 주워 막에 던졌다. 그런데도 소용이 없었다. 이제 점이 되어서 멀어진 카라마츠를 향해 이치마츠는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