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카라데이 기념 마피아 이치카라 연성입니다! 이치마츠는 보스의 어린 아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이복형인 오소마츠의 전 애인으로 나옵니다만 이치카라입니다.
“생일 축하한다, 이치마츠.” “감사하다고 해야지?”
감사는 선물의 내용에 따라서 하고 싶었지만 이치마츠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허리를 숙였다. 꼬마 신사의 완성이라며 달아놓은 리본 넥타이가 턱 끝을 콕콕 찔러 왔지만 선물이 이치마츠가 바라는 것이라면 그 정도는 참아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들 생일에 내가 이정도도 못해줄까. 그보다 열어보렴.”
손가락만큼이나 굵은 반지를 낀 손을 흔들며 하는 재촉에 못 이긴척하며 떨리는 손길로 상자를 풀었을 때 그 안에 들어있던 것은 이치마츠가 기대한 것과는 영 다른 물건이었다.
“어머나, 무척 예쁜 시계네요!” “역시 자네는 안목이 있어. 요즘 제일 인기 있는 장인이 만든 건데, 주문을 넣기도 힘들었지.”
이치마츠보다 어머니의 감탄이 먼저 쏟아졌고 덕분에 보스는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 어깨를 으쓱 거리면서 그 시계의 장인이 얼마나 콧대가 높았고 이치마츠의 선물인 회중시계가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니는 지 이야기가 더 길어지기 전에 이치마츠는 겨우 한 마디를 꺼냈다.
“하지만……. 총을 주시기로 했잖아요? 그 편이 더 구하기도 쉬웠을 거고. 톰슨의 기관단총 같은 거요.” “어머, 이치마츠. 넌 아직 총을 잡기에는 어리잖니.”
이치마츠의 항변에 보스는 뜨끔한 표정이었다가 어머니의 말에 다시 멋쩍은 표정이 되었다.
“그래, 아직 어리지. 대신 내년에는 꼭 총을 사주마.”
이치마츠는 다시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잘했다고 어깨를 쓰다듬어주는 어머니의 손길에 아버지는 이미 혼이 팔려있었다. 작년에도 그런 식이었다. 이치마츠는 벌써 열세 살이었는데도 도무지 어머니의 과잉보호는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늘그막에 얻은 귀여운 아내에게 혼이 팔려있는 아버지는 이치마츠에게 언제나 총을 주겠다고 약속만 했다.
“오소마츠는 안 왔어요?” “아, 좀 늦는다고 했는데 지금쯤이면 왔을 거다. 왜, 마중 가려고?”
그래서 이치마츠는 다른 쪽에 기대를 해보기로 했다. 둘만의 다정한 세계에 빠지도록 두 사람을 내버려 두고 이치마츠는 시계를 탁자에 올려둔 채로 방을 나왔다.
“도련님?” “오소마츠는?”
이치마츠는 현관문을 향해 걸어갔다. 턱 끝을 찔러오는 넥타이가 거슬렸다. 나비모양이라지만 어딜 보나 리본 모양이었다. 나비넥타이에 멜빵 반바지 같은 걸입고 선물은 회중시계라니 끔찍하기 그지없는 생일이었다. 이치마츠는 목 뒤에 손을 넣어 멍청한 모양의 넥타이를 풀어냈다. 손 안에서 넥타이를 구긴다고 화풀이가 될 리가 없어서 여전히 화가 난 이치마츠에게 뒤따라오던 하인은 쩔쩔매며 대답했다.
“사람이 왔었는데 늦어질 것 같다고 하셨어요.”
도대체 좋은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하루가 되어가고 있었다. 오소마츠의 열세 살 생일은 이렇지 않았을 거라고 이치마츠는 생각했다. 과보호하는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젊었을 시기였다. 보스, 그러니까 이치마츠의 아버지가 이치마츠의 어머니에게 쩔쩔 매는 이유 중 하나는 이치마츠의 어머니가 보스에 비해서 엄청나게 젊다는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그녀에게 몰락했을망정 귀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두 가지가 결합되어서 덩달아 이치마츠까지 도련님 취급을 받고 있었고 이치마츠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부름꾼은 어디 있어?” “손님방에 계세요.”
이치마츠가 열세 살 생일 선물로 회중시계를 받았다는 걸 알면 오소마츠는 틀림없이 허리가 끊어져라 웃을 게 분명했다. 오소마츠가 이복동생을 대하는 태도에는 마피아 주제에 귀족의 생활을 흉내 내는 아버지에 대한 비웃음과 어린아이에 대한 관용이 섞여 있었다. 화가 나는 지점이었지만 이치마츠는 오소마츠가 자기만한 시절에 술을 마시고 총을 쏴서 상대 패밀리 멍청이의 머리통에 구멍을 내준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다. 그러니까 그거야 말로 마피아, 그것도 보스의 아들에게 어울리는 삶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오소마츠의 부하가 근사한 총을 선물로 가지고 왔다면 오소마츠를 형이라고 불러줄 수 도 있었다. 오소마츠가 과연 생일 선물을 챙겨 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설령 선물이 없다고 해도 회중시계보다 나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치마츠는 들고 있던 넥타이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잔뜩 구겨진 날개가 조금 기분이 나아지게 했다.
“어라, 박력 넘치는 도련님이네.”
이치마츠와 긴장한 하인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태평한 목소리가 끼어들어와 이치마츠는 고개를 들었다.
“뭐야.” “아니, 마피아 보스 아들에게 어울리는 기백이다 싶어서 말이지.”
이치마츠는 눈썹을 추켜올렸다. 화풀이를 하고 있는 모습에 기백이라느니 박력이라느니, 보통이라면 시비라고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또 그 어조에서 비아냥거림은 느껴지지 않았다. 진심으로 감탄한 것처럼 보이는 남자는 거의 풀어헤친 수준으로 단추를 풀어 내린 와이셔츠에 검은 재킷을 아무렇게나 걸친 채로 그 손을 양복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였다. 그 손등에 똑똑히 보이는 굵은 핏줄과 그 위에 새겨진 타투만 봐도 멜빵 반바지 차림의 이치마츠보다 훨씬 박력 있었다. 대부분의 마피아라면 회중시계를 선물 받은 열세 살 보다는 어쨌든 남자다울 것이기는 했다.
“오소마츠의 애인, 이었나?” “아, 그건 아주 옛날에. 지금은 아니야.”
다만 대부분의 마피아들은 그 보스가 끔찍하게 아끼는 아들을 비웃지는 않을 것이었다. 오소마츠의 애인이라는 뒷배 덕분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흐응. 왜?” “이제 아저씨가 다 되어서 징그러워.” “오소마츠 아직 이십대잖아……?”
이치마츠의 의아함에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야 오소마츠는 완벽한 어른인양 굴고, 이치마츠를 갓 태어난 핏덩어리처럼 놀리는 아주 짜증나는 구석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과 스물여덟 살의 오소마츠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건 다른 문제였다. 그렇다면 이치마츠의 아버지, 보스는 할아버지도 아니고 유령쯤일지도 몰랐다.
“이름이, 어.” “카라마츠. 내 이름은 카라마츠야.”
전 애인에게 아저씨라고 불리는 건 오소마츠라고 해도 조금 불쌍하지 않나, 이치마츠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기억하고 있는 건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자신의 애인이라고 자랑한 적이 있어서였다. 새끼손가락을 구부려 앞뒤로 흔들며 '이거'라고 말하는 대신 조금 쑥스러운지 손가락으로 뺨을 긁으며 애인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이치마츠에게 있었다. 새로 산 총을 실험해 봤다던가. 패밀리에서 운영하는 술집에 어디 아가씨가 예쁘다던가 하는 이야기들 속에서 애인이라는 단어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오소마츠가 아저씨면, 보스는 유령인가?” “좋은 표현이지만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면 내 목이 날아가는 건가? 방심할 수 없네, 도련님!”
자신을 도련님이라고 부르고 오소마츠를 아저씨라고 부르고 보스를 유령이라고 수긍해 버렸지만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와 말을 할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다른 사람이라면 아버지에게 받은 총을 실험해볼 대상으로 삼았겠지만, 심지어 그 총을 받지도 못한 사실을 다시 떠올려도 아까만큼 화가 나지 않았다. 화가 난 도련님을 피해 소리 없이 사라진 하인이 들으면 안도할 생각을 하면서 이치마츠는 느긋하게 웃고 있는 카라마츠를 향해 억지로 뚱한 얼굴을 지어보였다.
“그럼 나는?” “응? 도련님이 뭐냐고?” “도련님이라고 하지 마. 오소마츠가 아저씨면 나는 뭐냐고.”
이치마츠의 질문에 카라마츠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내 이치마츠의 눈앞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하나하나 건방진 동작이었지만 이치마츠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도련님, 어른이고 싶구나?”
이치마츠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어른인 사람에게 굳이 확인시켜주고 싶지 않은 게 어린아이의 고집이기도 했다.
“내가 어른이랑 아이를 나누는 방법은 딱 한가지인데.” “뭔데.”
이치마츠는 성큼 다가선 카라마츠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서 발에 힘을 주어 버텼다. 여기서 한걸음 물러나면 안 될 것 같았다. 마피아의 성인식에 대해서 오소마츠가 늘어놓은 이야기들, 아마 틀림없이 거짓말이 섞여있었을 이야기들을 떠올리면서 이치마츠는 가슴을 힘주어 내밀고 움츠려든 어깨를 폈다.
“간단해. 거기가 서면 어른이지~.”
그러나 카라마츠의 공격이 들어온 건 어깨도 가슴팍도 아니었다. 카라마츠는 손가락으로 이치마츠의 고간을 가볍게 문질렀다. 그것만으로도 멜빵바지 안에서 부피를 키우고 있는 걸 지긋이 압박했다가 다시 문질러주면 금세 옷 너머로도 확연히 느껴질 만큼 이치마츠의 것은 단단해져 있었다. 카라마츠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입을 뻐끔거리고 있는 이치마츠를 향해서 웃어주었다. 이것만큼 명확한 식별법이 없었다. 이치마츠의 얼굴만큼이나 피가 몰려있을 부분을 뜨끈한 손바닥으로 문질러주면 이치마츠도 더는 똑바로 서있을 수 없었다.
“나는 아이랑은 안자지만, 도련님은 어른이네?”
눈가가 뜨거워지는 게 자신의 얼굴도 이치마츠만큼이나 붉게 물들고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카라마츠는 말했다. 입술을 적시는 자신의 혀를 따라오는 눈동자가 지나치게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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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마츠는 넥타이를 고쳐 맸다. 뒤에서 추천이라며 이상한 넥타이를 들고 있는 카라마츠를 무시하려다가 거울 너머로 눈이 마주쳐서 이치마츠는 결국 한 마디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맨날 그렇게 이상한 걸 주워와?” “아, 하지만 이거 정말로 이치마츠에게 어울릴 것 같은데.”
항상 그렇듯이 저것도 진심일 게 뻔했다. 어디서 났는지 알 수 없는 보라색 뱀피 무늬의 넥타이를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손에서 빼앗아 들었다. 카라마츠가 들으면 펄펄 뛸 이야기지만 첫 만남의 카라마츠가 넥타이를 하고 있지 않았던 건 사기였다. 마피아는 멋을 부리는 걸 좋아하는 인종이라지만 카라마츠의 멋 부림은 열심일 뿐 꼴불견에다가 하지 않느니만 못한 일들의 총집합이었다.
“총으로 협박해도 그 넥타이를 내가 맬 일은 없으니까 꿈 깨.”
허리춤에 손을 가져가려는 카라마츠의 턱밑에 가볍게 주먹을 가져다 댄 이치마츠는 그렇게 을러댔다. 평소에 카라마츠가 못생긴 옷을 입고 다니는 건 넘길 수 있는 일이라고 해도 오늘 이치마츠가 그렇게 입을 이유는 없었다.
“처음 만난 날에는 나비넥타이도 매고 있었잖아? 귀여웠는데.” “넌 아예 안차고 있었지. 그러니까 내가 속아서 반했고.”
정확히 말하면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만나기 전에 그 넥타이를 떼어서 버렸기 때문에 카라마츠가 나비넥타이를 한 이치마츠의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치마츠는 굳이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어라, 그랬어? 나는 이치마츠를 볼 때마다 항상 반하고 있는데.” “말이나 못하면.”
이치마츠는 와이셔츠 소매를 매만지는 카라마츠를 밀어냈다.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건 알았다. 항상 진심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카라마츠가 말하는 것 전부가 진실은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도 귀여워?”
그리고 카라마츠가 보여주는 것 외의 진심을 캐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이치마츠는 다른 것을 물어보았다. 지금도 귀엽냐는 건 어른이 되는 열여덟 번째의 생일에 남자애가 연인에게 물어볼 만한 질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나이 대라면 멋있다던가 잘생겨졌다던가, 키는 얼마나 크고 몸에는 얼마나 근육이 붙었는가 하는 자랑하고 싶어지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치마츠는 그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자신이 귀여운지 알고 싶었다. 손끝에 땀이 배이기 시작하는 손을 이치마츠는 장갑 밑으로 숨겼다. 머리카락을 잘 넘겨서 드러낸 이마에서 땀이 솟는 게 느껴졌다. 카라마츠의 대답을 듣는 데 방해가 될 정도로 스스로의 심장소리가 귓가에 울려 댔다.
“그럼, 도련님. 세상에서 제일 귀여워.”
살짝 눈을 가늘게 뜨고 대답하는 카라마츠의 표정이 아버지를 볼 때의 어머니의 사랑스러워하는 표정과 닮아있어서 이치마츠는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어린아이와는 자지 않는다고 말한 주제에. 어리광만 잔뜩 부리는 애인이 곤란한 건지 사랑스러운 건지, 이치마츠는 더 캐묻지 않기로 했다. 어른이 된다고 해서 모든 걸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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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마츠가 원하는 답을 듣고도 굳은 얼굴로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정돈하는 걸 카라마츠는 올라가는 입 꼬리를 손으로 가리며 바라보았다. 오년이나 되는 시간을 같이 보내고도 여전히 카라마츠가 도망갈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애태우는 게 여전히 풋풋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건 카라마츠가 여전히 이치마츠의 눈에 매력적이라는 반증 같아서 즐겁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카라마츠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면서도 어른이 되는 건 두려워하지 않는 그 욕심 가득한 태도가 어린아이 그 자체라 언제나 카라마츠를 설레게 했다. 물론 누구도 자라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자라도 언제까지나 귀여울 수도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항상 사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