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들에게 영능력이 있다는 설정에서 이어지는 마지막입니다. 쵸로오소 + 이치카라이고 쵸로오소 편으로 설정이 별로 두드러지지는 않는 후일담입니다. 쵸로마츠와 오소마츠가 투닥거리다가 다시 꽁냥질 하는 내용에 가깝습니다.
<설정>
오소마츠 : 육둥이 중에서 제일 빛 성향. 어지간한 잡귀는 근처에도 오지 못한다. 귀신은 보지 못한다. 동생들이 '본다'는 건 알고 있다.
카라마츠 : 역시 오소마츠처럼 귀신은 보지 못한다. 존재도, 동생들이 귀신을 본다는 것도 알지 못하지만 강한 수호신이 붙어있다.
쵸로마츠 : 귀신이 보인다. 물리칠 수는 없지만 귀신에게도 딱히 흥미로운 상대는 아니라서 못본 척 하고 있으면 귀신도 쵸로마츠를 스쳐 지나간다. 이것 저것 퇴치술에 대한 지식은 해박하지만 쓰지는 못한다.
이치마츠 : 부정한 것들이 잘 꼬인다. 귀신을 볼 수 있다. 물리치는 건 본인의 의지 밖. 부정한 걸 몸속에 가두었다가 멋대로 정화되는데 모두 본인이 조절할 수는 없다.
쥬시마츠 : 보인다. 물리칠 수도 있다. 오소마츠보다는 약한 빛 속성. 야구배트를 사용한다. 보이는 형제들을 케어해준다.
토도마츠 : 보인다. 꼬이는 속성이지만 이치마츠가 옆에 있으면 이치마츠를 노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다만 처녀귀신에게 자주 노림당할때가 있다.
토도마츠는 쥬시마츠가 건네주는 실을 바늘에 꿰었다. 부적을 감싼 흰색 손수건의 윗부분에 바늘을 찔러 넣고 토도마츠의 손이 몇 번 왔다 갔다 하자 훌륭한 주머니가 완성되는 것을 보고 쥬시마츠는 박수를 쳤다. 카라마츠도 감탄하는 소리를 냈다. 으쓱거리는 토도마츠에게서 바늘을 받아 든 쵸로마츠는 비스듬히 누워 발로 박수를 치고 있는 오소마츠를 향해 돌아섰다.
“ 자, 손 내놔.” “어, 정말 뽑을 생각? 땡중의 말 때문에 형 피 뽑아야 해?” “니트 주제에 제대로 일하고 있는 스님에게 땡중이라고 하는 건 그만 두고 손이나 내밀어.”
쵸로마츠는 한 손에 바늘을 들고 말했다. 날 때부터, 아니면 최소한 쵸로마츠가 기억하는 한 온몸에 빛을 두르고 귀신은 접근도 못하는 쾌적한 삶을 살아온 장남이 하는 말이라 더 고까웠다. 그런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는 반 바퀴를 굴러 몸을 바로 하고 쵸로마츠와 눈을 맞춰 왔다.
“쵸로마츠 지금 화내는 거야? 무섭네~.” “그래.”
오소마츠는 얼굴 밑에 손 받침을 대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저기 쵸로마츠, 부탁할 게 있으면 부탁합니다 하고 상냥하게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태도라면 언젠가 여자애한테 뺨을 맞게 될 거야.”
처녀 귀신에게 종종 뺨을 맞는 쪽이면서 토도마츠가 고개를 끄덕이는 게 쵸로마츠의 부아를 돋웠다. 쵸로마츠는 소리를 지르는 대신 주먹을 쥐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정작 본인은 내키는 대로 사는 주제에 가끔 통찰력 있는 소리를 하는게 마츠노가의 장남이라는 사람이었다. 쵸로마츠는 항상 무시했지만 그 말들은 대체로 쵸로마츠의 안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렇다고 해도 저 태도는 지나치게 자기 중심 적이었다.
“여자한테는 그렇게 안하지. 바보냐?” “일상의 자세부터 바꿔야지 쵸로마츠~. 냐짱 악수회가 있다면 바로 쵸로군은 톳티가 될 수 있다는 걸 까나?” 오소마츠는 입을 삐쭉 내밀고 빈정거렸다. 남에게 일상의 자세에 대해 설교하고 있는 니트라니 마츠노가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일 것이었다. 쵸로마츠는 눈 앞의 똑 같은 얼굴을 한대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접었다. 어제 저녁에 조금 멋있다고 생각한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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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일어나.”
쵸로마츠는 머리맡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나 화장실 가고 싶어.” “응, 잠시만……”
이불을 걷고 일어나려던 쵸로마츠는 멈칫했다. 오소마츠가 여기 있는 이상 거실까지는 안전할 것이었다. 그렇지만 화장실은? 거실과 다소 떨어진 화장실은 새벽에 가기에는 위험한 공간이었다. 오소마츠나 카라마츠에게는 상관 없는 이야기라고 해도 쵸로마츠와 토도마츠 둘이서는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토도마츠도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듯 울상이 되었다. 쵸로마츠는 잠시 고민했다. 형이 되어서 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는 지 웃고 있는 쥬시마츠를 깨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불이 젖혀진 요의 끝자락에서 이치마츠에게 끌어 안겨 자고 있는 카라마츠를 깨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은 처음부터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흔들어 깨웠다.
“뭐야?”
오소마츠는 눈을 비비면서 졸린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쵸로마츠의 얼굴을 보고, 토도마츠의 얼굴을 보고는 손등을 눈두덩에 가져다 댔다.
“어라, 쵸로마츠도 화장실 같이 가줘야 해~?”
손을 뗀 오소마츠는 평소보다 느린 말투로 농담을 던졌다. 막내가 화장실을 데려가 달라고 깨우는 게 주로 삼남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였다.
“응, 같이 가줘.”
그리고 쵸로마츠의 요구는 바로 그것이었다. 오소마츠는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어?” “무서우니까 같이 가달라고, 오소마츠 형.”
쵸로마츠는 토도마츠가 더 울상이 되기 전에 오소마츠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대로 오소마츠를 화장실로 끌고 가는 쵸로마츠를 앞질러 토도마츠가 바지춤을 잡고 뛰어갔다. 토도마츠가 소리 나게 닫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 앉아서야 오소마츠는 입을 열었다.
“혼자 일어난 게 억울 했어?” “아니야. 돌아가서 이야기 해 줄 테니까.”
쵸로마츠는 토도마츠가 손을 씻는 소리를 들으며 대답했다. 쵸로마츠의 대답에 오소마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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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로 돌아온 토도마츠는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잠들었다. 여섯 쌍둥이 중에서 잠을 설치는 건 쵸로마츠 혼자 인 듯 했다. 쵸로마츠는 투덜거리면서 차가워진 발을 이불 속에 밀어넣었다.
“쵸로마츠.”
쵸로마츠는 장남 쪽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그러고 보니 말해주겠다고 해버렸었다. 그건 아주 오랫동안, 여섯 명 중 네 사람만 간직한 비밀이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에게 부적과, 볼 수 있는 것과 그 밖의 일들에 대해서 모두 털어놓았다.
“알고는 있었는데.” “뭐?”
그리고 오소마츠의 반응은 쵸로마츠의 예상 밖이었다.
“아니, 세세한 부분까지는 모르고 있었지만 너희들이 뭔가를 본다는 건 알고 있었어. 그 뭔가가 나와 카라마츠에게는 영향이 없다는 것도.”
그정도면 다 알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쵸로마츠는 생각했다.
“요새 경마장에 안 간것도 그래서야?” “응, 그렇지. 카라마츠는 영향을 안 받는 거에 비해서는 도움이 안 되는 것 같길래. 아 카라마츠는 전혀 몰라. 연기력은 좋지만 자기가 아는 걸 숨길 수 있는 녀석은 또 아니잖아.”
카라마츠의 수호신은 카라마츠밖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 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보이지 않는데도 오소마츠는 자신이 볼 수 있는 걸 어떻게든 조합해서 말해주지 않은 진실까지 제법 근접해 있었다.
“맞아, 그래서 형의 도움이 필요해.”
그래서 카라마츠 만으로는 안되었다. 오소마츠의 도움이 필요했다. 쵸로마츠는 자신 쪽을 향해서 웃고 있는 오소마츠의 손을 모아 잡고 그렇게 말했다. 등 뒤로 닿아오는 쥬시마츠의 온기와 눈 앞에서 웃고 있는 오소마츠가 눈이 부셔서 눈이 슬슬 감겼다. 베개에 닿은 머리가 점점 무거워져서 쵸로마츠는 오소마츠가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는 걸 듣자마자 안심하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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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 해놓고 아침에 피를 뽑을 거라고 말하자 마자 저런 반응이었다. 성인이 된 남자가 바늘에 잠깐 찔리는 것도 참을 수 없다는 건 뭐랄까, 주사 맞기 싫다고 말하는 어린아이만큼 귀엽거나 이해가 가는 일이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피 한 방울이면 본인도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경마장에 갈 수 있고, 다른 동생들도 모두 자신의 취향대로 니트일을 하러 갈 수 있었다. 쵸로마츠는 다시 직장을 구하러 갈수도 있었다. 운이 좋다면 이번 주말에 있는 냐짱의 콘서트에는 니트가 아니라 직장에서 내정을 받은 당당한 사회인으로 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쵸로마츠는 다음 순간 오소마츠가 어디에 골이 난 건 지 이해했다.
“어차피 우리 다 쌍둥이잖아? 꼭 내 피일 필요는 없는거고~.”
그러나 이해하려고 해도, 어제 다 들어놓고도 굳이 저런 말을 한다는 게 쵸로마츠의 화를 부추겼다.
“그래? 그럼 형도 카라마츠로 갈아타지 그래? 귀엽고 훨씬 말도 잘 듣잖아.”
쵸로마츠는 그 말이 왜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갔는 지 알 수 없었다. 이치마츠가 자신을 노려보는게 느껴졌다. 토도마츠가 안절부절 하면서 소매자락을 손 안에서 구기고 있는 것도 보였다. 어차피 쌍둥이라 다 같은 거라면 자신도 여자력 높고 귀엽고, 가끔 좋은 향기가 나는 막내 쪽이 더 좋았다. 하지만 같지 않았다. 같은 얼굴이어도 개성이 있고 취향도 성격도 다르다. 물론 남들이 보기에는 다 같은 놈들이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여섯 쌍둥이는 서로 다른 사람이었다. 이제 와서 쉽게 대체 가능한 사이가 아니라서 쵸로마츠는 오소마츠 였다. 그런데도 오소마츠가 진지하게 말해준 비밀을 듣고도 쭉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게 화가 났다.
“쵸로마츠.”
카라마츠가 안절부절 하는걸 손등을 두어번 두드려 달래며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의 이름을 불렀다. 평소보다 다정한, 달래는 듯한 말투였다.
“쵸로마츠, 따라해봐. 형이 도와주면 냐짱의 콘서트를 포기하고 형과 데이트를 가겠습니다.” “하.”
쵸로마츠는 마른 세수를 몇번 하고는 손에서 고개를 들었다.
“형이 도와주면 냐짱과의 콘서트를 포기하고 형과 데이트를 갈게.”
화낸일이 우습게도, 저렇게 나오는 오소마츠를 쵸로마츠는 이길 수 없었다. 오소마츠만 할 수 있는 돌직구였다.
“그래.”
오소마츠가 웃으면서 내민 손가락 끝에 쵸로마츠는 바늘을 가져다댔다. 솟아오르는 피를 천 안의 부적에 떨어트린 물건을 토도마츠에게 건네고 쵸로마츠는 품 안에서 밴드를 꺼내 오소마츠의 손가락에 감아주었다.
“쵸로마츠 준비성 하나는 끝내주네. 여자애한테 뺨 맞겠다던 말은 취소~.”
부적을 거울 뒤로 돌려놓기 위해 형제들이 현관으로 몰려가는 걸 확인한 쵸로마츠는 그 얄미운 볼을 잡아 당겨 그 볼에 입맞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