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유진전력60분인데 훌쩍 넘겼네요! 무협이라는 소재 정말 좋아해서 불타올라서 이것저것 잔뜩 넣어서 쓰고 말았습니다.
저 17살에 독립적으로 길드를 세운 한유현의 길드장 면모 정말 좋아하는데요, 무협은 자기가 문파를 창설하는게 워낙 드문 소재다보니까 마교의 소교주가 되면 얻을 수 있는 환단으로 형을 고쳐주러 마교로 쏙 가버린 천재(뭐 ㅇㅇ 지체같은..) 유현이를 넣었습니다. 작품 내에서는 두루뭉술하게 나오니 우리 유현이 마교 소교주 아니고 그냥 창시했거든요 하는 마음으로 보셔도 됩니다.
악당모브, 유진이를 도와준 모브등이 나옵니다.
강호에 신진기재들이 출두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 중에서는 자기 이름을 알리겠다는 나이에 걸맞은 목적을 가진 자가 있는가 하면 복수가 목적인 자도 있었다. 그러다보면 강호의 은원이 워낙 복잡한 일이다 보니 정파가 그 복수의 대상인 경우도 안타깝게도 종종 있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 신진기재가 이름난 문파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건 긴 강호의 역사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드문 일이었다.
“자네 들었나? 수담파가 흑혈검마에게 멸문당했다고 하네!”
“언제적 이야기인가? 이미 사천최가도 그에게 걸려서 폐문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고 하던데! 그렇게 소식이 느려서 자네도 안될 사람일세.”
오대세가까지는 아니지만 사천을 주름잡던 두 문파가 하나는 하루아침에 장문인의 목이 날아가고 일대제자들까지 전부 다 죽어 멸문 당하고, 다른 하나는 장문인이 실종 된 뒤에 폐문이라는 수모를 겪자 강호는 한바탕 떠들썩해졌다. 강호에 연이 있는 사람이라면 객잔에서 모두 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검은 옷에 먹처럼 짙은 검을 쓰는 그는 약관을 막 지났을까 말까 하는 어린 나이라고 했다. 그가 검을 휘두르면 그 끝에서 푸른 불이 피어난다고도 했다. 들어본 적이 없는 검술에 혹자는 이것이 마교에서도 실종된 비급인 청염검법을 7식 이상 익혔을 때 나타나는 청염이라고 주장했지만 마교에서도 몇백년간 익힌자가 없다는 무공이기에 허황된 소리로 일축되었다. 아마도 강호에 출두한적이 없는 일인전승의 문파가 아니겠냐는 설이 호사가들의 입을 타고 퍼졌다.
수담과 사천최가에서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가 지나간 자리에 폐문당하는 문파가 늘고 대신 말을 남길 자도 늘어, 마침내 그가 콧대높기로는 강호에서는 견주기 어렵고 검성 마저도 단신으로 돌파하기는 꺼릴 사천당가에 들어가 그 장문인을 쓰러트렸을 때, 그가 강호에 은원을 갚으러 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는 없게 되었다. 그가 직접적으로 피의 대가를 받으러 왔다고 한 곳은 수담과 사천최가 뿐이었는데도 사람들은 그의 곧 흑혈검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이름을 누군가는 아니꼬워했고, 누군가는 그가 일으킬 새 바람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흑혈검마 한유현은, 관심이 없었다.
***
“유현아, 이거 먹어봐! 달달하니 맛있다.”
“응, 맛있네. 고마워 형.”
한유현은 형이 덜어준 작은 접시를 군말 없이 받아들었다. 어릴적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서인지, 그의 형은 아직 자신의 동생이 당과를 건내주면 방긋방긋 웃어주던 어린 아이로 생각되는 모양이었다. 그때에도 한유현보다 한유진이 단 것을 더 좋아했는데도 그랬다.
“이것도 맛있다.”
그래서 한유현은 군말 없이 그냥 형이 집어준 것을 낼름 받아먹었다. 단맛 끝에 조금 매콤한 맛이 났다. 독의 기미는 없었지만 한유현은 마음을 놓지는 않았다. 자신이야 청염을 다룰 수 있게 된 뒤로 만독불침이 되었지만 형은 그렇지 않은 탓이었다. 이미 많은 독에 익숙해졌다고 형은 말했지만 한유현은 이제 어떤 독도 형에게 해를 입히게 두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래서 지금 2층을 비워줄 수 가 없다고?”
“아이고, 네. 지금은 객잔이 꽉 차있습니다요, 나으리.”
한유진은 귀에 거슬리는 큰 소리에 1층으로 시선을 던졌다. 한유진의 시선을 따라서 한유현의 시선도 아래로 향했다. 요즈음 객잔이야 어딜가도 흑혈검마와 그의 행보에 따라서 시끄러웠지만 그 이야기들은 한유진의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건 유현이가 너무 잘 나서 그런 거였고 별호가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 검제나 염제, 무신이나 지존 같이 더 멋있는것도 있지 않나하고 이야기 하면, 한유현은 형이 아닌 남이 부르는 이름에는 관심이 없다고 해서 한유진의 마음만 조금 갑갑한 정도였다.
“누가 있는데?”
“예에?”
"누가 있길래 호북목가의 일원인 나 목완용이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냔 말이야.“
“그걸 어떻게 말씀드립니까? 제가 주인어르신한테 혼쭐이 날텐데요!”
한유진은 점소이가 결국 목 머시기한테 멱살이 잡혔다가 놓아지는 걸까지 지켜보았다. 약한자에게 무력을 휘두르는, 시정잡배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호북목가면 나름 칠대세가에 꼽히기도 하는 문파였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지, 어딜가나 저런 놈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제일 뒷배가 없고 만만해 보이는 게 유현이와 자신이었는지, 한유진은 한숨을 쉬면서 건방진 얼굴로 계단을 올라오는 얼굴을 보았다. 모처럼 유현이가 검은 옷이 아니라 붉은 색의 옷을 입었는데 결국 또 피가 튈 모양이었다.
“어디서 온 대협들이십니까?”
“형, 더 먹지 않고? 아까 이거 좋아하는 것 같던데 더 시킬까?”
“음, 그럴까? 차도 새로 내야겠다.”
그리고 한유현은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않고 어디서 온 놈들이냐고 묻는 목 어쩌구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이쪽을 안절부절 못하고 바라보고 있는 점소이를 향해서 손을 들었다. 점소이가 후다닥 달려오자 목잡졸은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 어디 촌구석에서 왔는지는 몰라도 별호도 없어 보이는 어린놈들이 나 호북기룡 목완용이를 무시해?”
“이거랑 이거, 가는 길에 먹을 건데 좀 싸줄수 있어요?”
“앗,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해드릴게요.”
두 손님들이 불쌍하게도 호북목가의 일원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빠르게 내려가는 점소이의 뒤로 점혈당해 쓰러진 목완용을 무시하고 두 사람의 말이 이어졌다.
“소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유현아.”
“응, 한군데 더 들려야겠네.”
“아이구, 내 동생, 피곤해서 어떡하지?”
“형이랑 맛있는 거 먹었잖아. 괜찮아.”
“그래도 이런 거 때문에 괜히 귀찮잖아.”
“그럼 형이 저녁에 재워주면 좋겠는데.”
한유진은 손을 올려서 귀여운 동생의 머리를 쓱쓱 쓸어주었다. 바라는게 겨우 그것뿐이라는 게 애틋했다. 마교의 소교주씩이나 되는 녀석이, 그 힘만으로 결정되는 자리에 이르러서 원했던 것은 마교의 비급이 담긴 환단 뿐이었다며, 형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그랬다고 자기 앞에 무릎 꿇던 날도 그랬기 때문에 한유진은 한유현의 머리를 몇 번 더 쓰다듬어주었다. 형의 기분이 풀려서 안심이 된다는 듯이 마주 웃어오는 얼굴에 대고 한유진은 말했다.
“멸문으로 하자.”
“형이 원한다면, 그래.”
그 다음날, 하북목가의 멸문 소식이 강호를 다시 한번 뒤 흔들었다. 흑혈검마의 마지막 목적지는 소림이라고 했다. 강호가 생기고 세력이 생겨나고 가끔은 투쟁하는 동안 앞으로 나선적은 없지만 소림사가 정파를 주름잡는 세력보다 약한 적은 결코 없었다. 그런 소림사에게 흑혈검마가 단신으로 은원을 갚겠다니, 정파의 사람들은 모두 그의 광오함을 입모아 비난했다. 그를 비난하는 사람도, 그를 마음으로 옹호하는 사람도 잊고 있던 한가지 말은, 그는 복수하러 오지 않았고 은원을 갚으러 왔을 뿐이며 은원에는 은혜도 포함되어있다는 것이었다.
***
“오셨습니까, 사숙.”
소림의 장문인은 눈앞의 노승에게 인사를 올렸다. 단신으로 들이닥치는 약관의 고수를 상대하는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는 긴장감이 소림사의 정문 앞을 막고 있었다. 흑혈검마는 소림에는 여태 다른 곳들에게는 하지 않았던 짓을 했기 때문이었다. 며칠전 소림에 은원을 갚으러 간다는 흑혈검마의 서찰이 날아들었다. 멸문을 당한 수담이나 사천최가, 하북목가에게도 하지 않았던 짓이었다.
“그래서, 그때 말이야.......”
그리고 그 긴장을 여실히 깨는 인영이 잔뜩 긴장한 장문인의 눈앞에 보였다. 파란 도복을 입은 젊은 남자는 무공을 익혔다고 보기에는 보법의 수준도 기세도 높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옆에는 먹물을 잔뜩 머금은 붓으로 그어 내린 것 같이 검은색 일색의 남자가 있었다. 허리에 찬 검도 꼭 남자만큼이나 검었다.
“흑혈검마...!”
“앗, 진승 대사님.”
“이런, 설마 했지만 한유진 대협이신가?”
기세를 일으킨 장문인은 자신의 기세를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흑혈검마의 무공에 등이 오싹해져왔다. 그러나 그 흑혈검마는 당장 공격할 의사는 없는지 사숙에게 포권하며 인사를 올리는 사내를 따스한 눈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
“맞습니다, 기억해주고 계셨네요.”
“아, 그럼 그 귀한 걸 처먹고도 비리비리한 놈의 얼굴을 잊어?”
언제나 진중하고 자애로운 성격의 진승 사숙에 비해서 정은 많지만 입이 험한 편인 진무 사숙의 말이 장문인의 어깨를 지나쳐서 튀어나갔다.
“아하하, 여전하시네요. 아, 유현아 인사해, 이쪽이 내가 은혜를 입은 분들이야.”
“한유현이라고 합니다. 형을 구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흑혈검마는 자신을 이끄는 손길에 순순히 두 노승에게 포권을 했다. 장문인은 이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흑혈검마의 포악질을 피하기 위해 몇 명의 제자만 남기고 절 내를 비운 게 다행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사숙,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몇 년 전에 객잔에서 아무리 봐도 마교쪽인 놈한테 끌려간 놈이 있다기에 께름칙해서 가봤더니 저놈이 내력이 뒤집혀져서 죽어가지 뭐냐. 그런데 이 진승 사형이 그런걸 보고 지나치실 어르신이냐? 그래서 자기가 예전에 대사형이 되면서 받았던 소환단 그 귀한걸 저놈 입에다가 쑤셔 넣어줬지.”
“진무 자네도 운기조식을 도와줬잖나.”
“아 그럼 그 귀한 걸 먹고도 못 받아들이고 다 흘려서 죽는 꼴을 봐야 돼요? 불법을 익힌 인간이?”
두 노승이 투닥거리는 걸 본 장문인은 다시 한 번 한유진의 얼굴을 보고, 흑혈검마의 얼굴을 보았다. 조금 닮은 것도 같았다.
“그래서 은혜를 갚으러 왔다고, 요?”
장문인은 말을 고쳤다. 어쨌든 상대는 심사가 뒤틀렸다는 이유로 문파 하나를 멸문시킬 수 있는, 강호의 역사에서도 손꼽히게 강한 인물이었다.
“여태까지 정파의 많은 문파들에게 은원을 갚은 흑혈검마는 마지막으로 소림사에 다다랐다가 소림을 폐문도 멸문도 하지 않고 사라질 겁니다.”
장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는 동생 대신 한유진이 설명을 꺼냈다.
“그 사실을 활용하실 수 있겠죠. 그게 저희가 드리는 보답입니다.”
장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림의 위상을 더해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
“흑혈검마의 무공의 고강함이 온 강호를 울리는데 우리가 이겼다고 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노승들이 펼친 설법에 마음이 움직여 은원 갚기의 무상함에 대해 깨달았다는 정도로 이야기 해 두도록 함세.”
진승이 그렇게 말했고 한유진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객잔에도 한번 들릴까? 그 객잔 주인이 내가 끌려갔다고 이야기를 해줘서 내가 이 기연을 얻을 수 있었던 건데. 네가 날 도우러 올 때까지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고.”
“그러네. 형이 좋아하는 것도 잔뜩 시키자.”
“소림사 앞으로도 좀 먹을 수 있게 달아놓을까......”
두 인영이 서로를 의지하면서 걸어 나가는 것을 진승은 그저 바라보았다. 분명히 그의 감이 말한 대로, 한유진 대협을 구한 것은 소림에 도움이 되었다. 다만 강호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흑혈검마가 한유진 대협이 없으면 한순간도 더 살아있지 않을 거라는 것을 진승은 지금에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