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도 혼미한 한 주였네요... 공포저항 스킬이 없는 나약하고 미지근한 동인이 보기에는 너무 무서운 원작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무 아래에 누워있는 유현이 넘 슬프고 좋아서 뭔가 선동과 날조하고 싶어서... 만약 내스급(회귀 후 유진이의 잘풀림)이 그 잠든 유현이가 꾸는 꿈이라면? 이란 소재로 뭔가.. 뭔가가 보고 싶었습니다. 짧습니다.
*내스급 138화까지의 네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현은 자신을 바라보는 기척을 느꼈다. 깨워야 하나 하고 고민하는 듯 한 조심스러운 움직임이 눈을 감은 그의 머리카락을 간질였다. 이렇게 걱정스럽게 상태를 살펴오는 약한 기척이라면 유현은 한사람 밖에 알지 못했다. 눈을 뜨지 않아도 유현은 그의 형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차가운 곳에 누워있는 유현이 감기에 걸릴까 걱정하는 듯 한 시선이 유현의 뺨을 간질이고 어깨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그 시선에 담긴 온기가 좋아서 유현은 눈을 감은 채 잠시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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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시스템이라는 건 대체로 한유현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얼굴에 가볍게 떨어져 내리던 눈송이가 멎어서 유현은 몸을 일으켰다. 유현은 익숙한 D급의 던전 안에 있었다. 익어버린 독룡종의 시체가 다시 차갑게 굳을 때까지 유현은 그 곳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들면 신체의 일부가 사라진 그의 형의 시체가 보였다. 그의 기억 속 형의 마지막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지만, 지금 유현의 눈 앞에 놓인 한유진은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이곳이 꿈의 첫 시작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장치였다. 그러나 알고 있다고 해서 그를 할퀴어오는 상실감에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곳에 돌아오면 한유현은 사이가 틀어졌다고 해도 형이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에게 얼마나 안정감을 주었는지 새삼 깨닫고는 했다. 그 얼굴이 상냥하게 웃어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몇년 전의 일이었고, 앞으로도 볼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고 해도 그랬다. 형이 앞으로 다시는 그에게 웃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이런식으로 확인 받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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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은 발치의 돌조각을 바라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는 엘릭서가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쓸데없는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호칭과 함께 그의 손에 떨어진 것은 손상된 아이템뿐이었다. 소원석의 파편이라는 그 아이템에는 누군가가 시간을 되돌려 놓는데 사용했다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일반적인 D급 던전이었다고 해도 납득할 수 없는 보상이었는데 심지어 이 던전은 형을 잡아먹은 던전이기 까지 했다. 유현은 던전 벽에 그 아이템을 집어 던졌다. 던전의 벽에 박히는 대신 튕겨 나온 돌조각은 그가 막을 새도 없이 한유진의 시체를 스치고 지나가 독룡종의 시체에 쳐박혔다.
'오, 세상에........'
돌 조각이 독룡종에 박혀드는 것과 거의 동시에 유현의 귓가에는 그가 여태 던전에서 들어보지 못한 종류의 알림음이 울렸다. 시스템과 똑같은 형태로 전달되는 목소리에 유현은 눈을 치켜떴다. 그의 눈앞에는 조그만 물방울 모양의 몬스터가 떠있었다.
'세상에, 소원석의 파편이 이런 식으로 되어있을 줄이야.'
"넌 뭐야?"
눈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소리는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위화감을 무시한 채로 유현은 그의 형에게 둥둥 떠가는 생물체의 앞을 막아섰다.
'미안해요, 이건 우리로서도 의도한 바는 아니었어요.'
"지랄하지말고, 넌 뭐냐고."
생물체의 표면에서 눈코입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생겨나 얼굴을 만들었다. 그 얼굴이 그를 향해서 슬퍼 보이는 것 같은 모양을 만들어 냈다. 유현은 그것의 정체가 짐작가는 바가 있었지만 다시 한 번 물었다.
'계약자에게 알려주기에는 너무나 위험이 커요.'
"그래서?"
유현은 물방울의 표면에서 솟아난 손 같은 것이 그의 두 눈을 향해 손가락을 흔들어 보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걸고 계약을 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모두 의미 없는 일이었다. 그 계약의 대상자와 이 몬스터가 동족이라고 한다면 마찬가지로 이 몬스터에게도 형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이런 꼴이 되어있는걸 원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영향을 확인하려고 했을 뿐인데.'
"나한테는 파편을 주고 누구에게는 제대로 된 소원석이라도 줬나보지?"
유현은 눈 앞의 생물체에게 어울려줄 생각이 없었다. 한유진이었다면 그 울상인 얼굴에 약간의 동정심이라도 느꼈을 지 모르겠지만 한유현은 그의 형과 달랐다. 그의 손에는 다시 검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소원석 없이도 당신의 소원을 들어줄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해요.'
"내 소원이 뭔지 네깟게 알아?"
물방울은 이제 곤란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유현이 알 바는 아니었다. 애초에 던전이라는게 생겼기 때문에 그의 형이 결국 목숨을 잃은 것이기도 했다. 시스템이 던전을 만들어 낸 것인지 던전이 시스템을 만들어 낸 것인지는 여전히 협회에서도 연구중인 일이었지만 그의 형은 둘 다 없는 세계에서 더 행복했었다. 지금의 세계가 유현에게 더 잘 맞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유현은 형이 행복하기만 하다면 언제까지나 그 답답한 세계에 남아 있었을 수도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소용없는 가정이었다.
'당신을 사랑해준 양육자의 행복.'
"틀렸어."
한유현은 물방울을 향해서 손을 뻗었지만 물방울은 예측했다는 듯이 그의 공격을 피했다. 그것은 슬픈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물론 지금의 당신은 안전함을 선택했지만, 그가 행복하기도 바라고 있잖아요.'
다시 한 번 손을 휘두르려다가 유현은 멈추었다. 우습게도 그것의 목소리가 한유진에 대해서 어떤 종류의 애정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공격이 통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물방울은 아까보다 투명해져 있었다.
'당신의 꿈을 베이스로 해서 그를 기를거에요. 적절한 때가 되면 꿈에서 당신을 가르고 나올 수 있겠죠.'
"그게 가능하다고?"
물방울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 비슷한 것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물방울의 손짓에 소원석의 파편이 독룡종의 시체에서 떠올라 한유진의 뜯겨나간 옆구리에 스며들었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굳어있던 유진의 표정이 잠든 것 처럼 편안해졌다.
'길가에 몬스터가 돌아다니는 일도 몇 년 전까지는 현실적이지 않았을 텐데요?'
"계약이 필요한가?"
'아니에요. 다만 당신의 꿈이니까 관리가 필요해요. 여기가 시작점이라는 걸 잊지 말아요.'
"때가 되는 건 어떻게 알지?"
'스스로 알 수 있어요.'
유현은 물방울이 이끄는 대로 유진의 곁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심장은 뛰고 있지 않았지만 아까처럼 냉기가 올라오는 몸은 아니었다. 미지근한 온기가 그의 형에게서 느껴졌다. 한유현은 눈을 감았다. 몇 년 동안이나 불면증은 한유현을 괴롭혀왔지만 지금은 몸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이 잠이 몰려왔다. 그와 어깨를 맞대고 있던 유진의 몸이 거대한 나무로 어느새 형체를 바꾸고 있었다. 훌쩍 자란 나무가 그의 몸 위로 그늘을 드리우고 나무뿌리가 그를 감싸는 것을 보면서 유현은 눈을 감은 기억도 없이 꿈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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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지켜보는 시간의 반복이었다. 유현은 어린 시절에 종종 자신의 꿈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들어주던 형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했다.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칭찬해주는 게 좋아서 더 아이 같은 소리를 덧붙였던 적도 있었다. 다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꿈이라는 건 원래 깨어나서는 허점투성이인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허무맹랑한 전개라도 꿈속에서는 그게 현실이었다. 꿈속의 한유진은 한유현 대신에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동생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꿈이 거기에 이르고서야 유현은 그의 꿈을 통해 형을 되살린다는 게 과연 옳은 일인 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꿈속의 한유진이 한유현을 사랑하는 건 꿈 밖에서는 사라질 허황된 소리 같았다.
그런 그의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꿈속의 한유진은 한유현을 사랑했다. 그렇지만 그 사랑을 받는 한유현은 불안했다. 어쩌면 위화감을 느끼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아니면 한유진이 거짓말을 하고 있어서 일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유현이 기억하는 헌터로서의 유진이 언제나 그랬기 때문이었다. 제발 던전에 들어가지 말라고 해도, 그냥 주는 돈을 받고 안전하게 살라고 해도 그의 형은 언제나 던전에 갔고 유현의 말을 듣지 않았다. 유현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하더라도 꿈속의 형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꿈속의 허점을 찾아내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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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일어났어? 더 자지."
유현은 그의 몸을 바라보고 있는 유진을 향해 말을 걸었다. 유진의 몸 너머로 유현의 몸을 감싼 나무뿌리가 비쳐보였다. 처음 꿈을 꾸기 시작했을 때보다는 많이 불투명해져 있었지만 아직도 적절한 때는 아니었다. 유현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그 얼굴에는 걱정이 서려있었다. 꿈에서 깰 때가 되면, 유진은 더 이상 그를 걱정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유현은 생각했다. 더 이상 그를 사랑해주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래도 유진이 살아있기만 하다면, 유현은 그걸로 충분했다.